영원회귀

2025. 12. 25. 17:21·솔직해보려는 회고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여름이 지나고 여전히 길게 느껴질 겨울이 왔다.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시간을 쏟고 있는 까닭일까 이번 겨울은 더 춥고 짙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후회와 자기반성이 아닌 있는 그대로와 사유를 위한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돌아가도 다시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자기 확신,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매 순간이 의미 있었음을 느끼며 한 글자씩 소중하고 다정히 밀어 본다.

 

1. 일

푸르른 여름 내내 나를 몰아세웠던 것은 낙엽이 지기도 전에 색이 바래 나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늘 그랬듯 자기 세계에서 큰 사건이라 여겨졌던 것들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닳고 무뎌져 평범한 사건이 되어버렸다. 적성에 맞지 않아서, 인간관계에 힘이 들어서, 생각한 것이 아니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것은 '일'에 대한 불확실한 정의에서 오는 태도일 것이라 생각한다.

 

내게 '일'이란 무엇인가? 경제적 자립,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기능뿐이었다면 헷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막연히 내뱉는 자아실현과 같은 개념도 너무나 추상적이다. 어쩌면 '이때쯤 해야만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는가. 나는 그저 일이 재미있고 마음에 드는 요즘, 그 이유를 알고 안주하지 않았으면 할 뿐이다.

 

2. 나는 얼마나 나를 위해 살고 있는가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은 잠을, 9시간은 일을, 3시간은 지하철에서 보내고 나면 내게 남는 시간은 4시간이다. 그중 식사와 씻는 시간 등 인생의 공과금을 지불하고 나면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남짓이다. 턱없이 부족하다 느껴지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3시간은 나를 위해 쓰고 있는가? 단언할 수 없다. 세상의 온갖 무질서하고 무의미 해 보이는 것들은 겉으로는 봐야만 할 것 같은, 행복을 줄 것 같이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를 완전히 무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일 정도이다.

 

나의 3시간은 둘 중 하나다. 첫 째는 카페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다. 무언가 만들어내는 과정은 언제나 즐겁다. 회사 일로서 만드는 일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즐거움을 주지만 주체적으로 상상하던 것을 실현해 내는 만듦은 그 밀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하루를 생산적으로 살고 싶어 시작한 '데이블럭' 프로젝트를 최근 다시 재개했다. 꾸준히 올라오던 사용자들의 목소리에 부응하고 싶기도, 요즘 내게 다시 필요해졌다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것 무엇이든 만들어나가는 꿈을 위해 노력하는 일은 내 하루를 뜨겁게 열정으로 만든다.

 

둘 째는 영화를 보는 것이다. 최근 인문학, 철학 등에 관심이 많아지며 자연스레 책과 영화에 시선이 가게 되었고 나와 다른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한정된 세계를 넓혀주었다. 이전에는 오락의 역할 뿐이었다면, 이제는 경험의 역할로서 다양한 생각과 삶의 태도를 비유적으로 건네주고 있다. 푹신한 침대 위에서 매일 다른 곳을 여행하는 기분을 느낀다. 평소 보고 싶었던, 누군가 추천해 준 좋은 영화를 감상하는 일은 내 하루를 차갑게 진정시켜 준다.

 

3. 순응하는 삶, 투쟁하는 삶

적지 않은 시간을 출퇴근 지하철에서 보내다 보면 자연스레 무기력해지곤 한다. 저마다의 피곤함 속에서 모두가 한 손을 들고 작은 화면 안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나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 나 또한 피곤함에 굴복해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을 휘적거리다 보면 지하철 안이 닭장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나는 피곤함에, 편안함에 순응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투쟁은 독서였다. 빠르게 지나가 형체조차 흐릿한 것들에서 벗어나 느리지만 선명한 글자를 좇으며 삶의 의존성을 역전시키고자 했다. 독서는 어려웠다. 굳이 무거운 책을 들고 다녀야 하고, 지하철만큼이나 집중력도 흔들렸으며, 무엇보다 답답했다. 이처럼 작다고 생각한 투쟁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것은 습관이 되어 조금이나마 내 것이 되었다 느꼈을 때의 효용감은 절대 작지 않았다. 나는 이제야 내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좋음에 맞서는 방법을 경험한 것이다.

 

4. 불확실한 사람에 관하여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언제 생길까? 정확히는 언제 그런 마음이었다 자기 확신할 수 있을까? 관계의 크기나 시간에 비례해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은 다음 단계로 발전하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솔직함과는 반대로 넘실대는 파도에 떠밀려오다 보니 내 섬엔 응어리만 쌓여갔다. 상처 입을 상황을, 상처 입힐 사람이 될 용기를 내지 못한 대가는 언제나 씁쓸하고 조용히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불확실한 사람이 이야기한 그 불확실한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내 안에서 외면하고 짓누를 것이 아닌 향유하고 꺼내놓아야 할 형태인 것이다. 타인은 절대 이해할 수도 대신해 줄 수도 없는 나의 소중한 감정인 것이다. 이 모든 감정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불확실함에서 오는 외로움보단 즐거움을, 사랑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확실한 사람, 사랑, 마음에 관하여 나는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당신이기 때문이다.

저작자표시 (새창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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